이 글은 웹접근성, 공공 웹서비스, 그리고 개발자의 책임에 대해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고민해온 기록이다.
법과 기술, 기준과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정말 모두를 위해 만들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보려 한다.
웹접근성 업무를 오래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비슷한 질문을 반복해서 듣게 된다.
“접근성 인증도 받았고, 점검도 끝났는데 이제 접근성은 어느 정도 정리된 거 아닌가요?”
처음 이 질문을 들었을 때는 나도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많은 공공 웹사이트들이 WCAG 2.1, KWCAG 2.2 기준을 충족했고, 스크린리더 테스트도 통과했고, 명도 대비도 맞췄다.
하지만 현장에서 사용자들을 직접 마주하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접근성은 통과했는데, 왜 사용을 못 하시죠?”#
한 번은 고령 학습자를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시스템을 점검한 적이 있다.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 키보드 접근 가능
- 대체 텍스트 제공
- ARIA 속성도 충실
- 접근성 진단 결과도 ‘적합’
그런데 실제 사용자에게 화면을 맡겨보니 이런 말이 돌아왔다.
“어디를 눌러야 할지 모르겠어요.” “왜 이 화면이 갑자기 바뀌는 건가요?” “이 버튼을 누르면 뭐가 되는 건지 설명이 없어요.”
접근성 기준은 모두 지켰다. 하지만 사용자는 계속 길을 잃고 있었다.
또 다른 예시로는 키오스크가 있다. 접근성 기준을 충족한 키오스크도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는 여전히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접근할 수 있는 화면을 만든 걸까,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화면을 만든 걸까?”
장애인 접근성만으로는 부족해진 이유#
웹접근성은 분명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도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이다.
하지만 현실의 사용자는 기준표에 등장하지 않는다.
접근성이 놓치는 사용자들#
장애인 접근성 기준은 주로 다음과 같은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다:
- 시각장애인 (스크린리더 사용자)
- 청각장애인 (자막 필요)
- 지체장애인 (키보드 접근)
- 색각이상 (명도 대비)
하지만 실제 디지털 서비스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용자는 훨씬 광범위하다:
- 디지털 미숙련자: 장애는 없지만 디지털 환경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
- 고령자: 인지 속도가 느리고 복잡한 인터페이스에 취약한 사람
- 인지적 어려움: 글을 읽는 속도가 느리거나 복잡한 문장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
- 상황적 제약: 한손 사용, 밝은 햇빛, 소음 환경 등 일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
이들은 접근성 기준을 충족한 서비스에서도 여전히 배제된다.

사진: Vitaly Gariev / Unsplash
기술적 접근 ≠ 실질적 이용#
접근성 인증을 받은 서비스에서도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 버튼은 보이지만 무엇을 하는 버튼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움
- 오류가 발생해도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음
- 복잡한 절차에서 현재 어느 단계인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음
- 실패 메시지가 반복될수록 더 위축되고 포기하게 됨
이 지점에서 나는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접근성은 끝난 것이 아니라, 접근성만으로는 부족해진 시대가 온 것이라는 걸.
웹접근성과 디지털포용, 무엇이 다른가#
디지털포용은 접근성의 상위 개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질문 자체가 달라진 개념에 가깝다.
접근성 vs 디지털포용: 핵심 차이#
| 구분 | 웹접근성 (WCAG/KWCAG) | 디지털포용 |
|---|---|---|
| 핵심 질문 | 접근할 수 있는가? | 이용할 수 있는가? |
| 대상 | 장애인 중심 | 모든 국민 (디지털 취약계층 포함) |
| 범위 | 기술적 장벽 제거 |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환경 조성 |
| 평가 기준 | 33개 검사항목 준수 | 실제 사용 가능성, 이해도, 선택권 |
| 접근 방식 | 보조기술 호환성 | 디지털역량 함양 + 대체수단 제공 |
구체적인 차이점#
로그인 화면을 만든다면:
접근성 관점에서는
- 키보드로 입력 가능한가?
- 스크린리더가 읽을 수 있는가?
- 명도 대비가 충분한가?
- ARIA 라벨이 적절한가?
디지털포용 관점에서는 추가로
- 실패했을 때 다음 단계가 명확한가?
- 오류 메시지가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되어 있는가?
- 소셜 로그인 같은 대안적 방법이 있는가?
- 고령 사용자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 비밀번호를 잊었을 때 쉽게 복구할 수 있는가?

사진: Rodeo Project Management Software / Unsplash
그래서 ‘디지털포용법’이 제정되었다#
법 제정의 배경#
국회입법예고에 따르면, 디지털포용법의 제정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행 「지능정보화 기본법」은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의 정보통신 분야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핵심기술을 개발하고 산업생태계를 조성하는 등 지능정보화의 기반 마련 및 관련 정책 추진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으나 취약계층에 대한 정보 격차 해소 위주의 정책으로 구성되어 있어 디지털포용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기업과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데는 한계가 있음.
이에 디지털포용법을 제정하여 모든 국민이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법적ㆍ제도적 틀을 마련하고 디지털포용 정책의 효과적인 수립ㆍ시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사회 구성원 개인의 삶의 질 향상과 산업 및 국가의 성장을 통한 새로운 디지털사회 구현에 기여하고자 함.
즉, 기존의 접근성 정책이 “장애인과 취약계층의 정보 격차 해소"에 초점을 맞췄다면, 디지털포용법은 **“모든 국민의 디지털 기술 향유”**로 패러다임을 확장한 것이다.
디지털포용의 법적 정의#
디지털포용법 제2조는 ‘디지털포용’을 **“모든 국민이 차별이나 배제 없이 지능정보기술의 혜택을 고르게 누릴 수 있도록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접근성을 넘어 디지털역량 함양, 대체수단 보장, 기술 역기능 예방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디지털포용법, 누구를 위한 법인가#
법의 대상과 방향#
디지털포용법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계층에 주목한다:
1. 전통적 디지털 취약계층
- 장애인
- 고령자
- 저소득층
- 농어촌 거주자
2. 새로운 디지털 소외 계층
- 디지털 미숙련 성인
- 한국어가 서툰 이주민
- 복잡한 인터페이스를 이해하기 어려운 인지 취약층
- AI 기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중장년층
3. 상황적 취약층
- 긴급 상황에서 디지털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 사람
- 일시적으로 손을 쓸 수 없는 사람
- 특정 기기나 환경에 제약이 있는 사람

사진: Greg Rosenke / Unsplash
법의 3가지 핵심 방향#
1. 디지털역량 함양
- 디지털역량센터 지정 및 운영
- 표준화된 교육 교재 개발·보급
- 디지털역량 종합정보시스템 구축
2. 이용환경 보장
- 지능정보서비스 및 제품의 접근성 보장
- 키오스크 등 무인정보단말기의 “사용 용이성” 의무화
- 디지털 기술 미이용자를 위한 대체수단 제공
3. 포용적 기술 개발 촉진
- 디지털포용 기술 개발 지원
- 관련 산업 육성
- 민간 참여 활성화

사진: Elizabeth Woolner / Unsplash
법이 바뀐다는 건, 책임의 기준이 바뀐다는 뜻이다#
디지털포용법과 AI 기본법은 2024년 12월 26일 국회를 통과했으며, 2026년 1월 22일부터 시행된다.
이 법들을 처음 읽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다.
“이제는 기술을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졌구나.”
이 법들은 단순히 “차별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 배제되는지, 어디서 이해를 놓치는지, 자동화가 누구에게 부담이 되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기획자만이 아니라 개발자에게도 직접 향한다.
특히 디지털포용법은 이제 **“사용하기 쉬운 키오스크”**를 의무화한다. 접근성 기준을 넘어, 실제 사용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접근성 이후, 개발자는 무엇을 설계해야 할까#
웹접근성 업무를 하며 나는 늘 두 가지 사이에서 고민해왔다.
- 기준을 충족하는 개발
- 사람을 돕는 개발
디지털포용은 이 둘을 다시 하나로 묶으려 한다.
개발자 역할의 확장#
앞으로의 개발자는
- “동작하느냐"가 아니라
- “설명되느냐”
- “선택할 수 있느냐”
- “되돌릴 수 있느냐”
- “이해할 수 있느냐”
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이건 부담이 아니라, 개발자의 역할이 확장되고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접근성을 넘어선 시대, 질문이 바뀌었을 뿐이다#
접근성은 여전히 중요하다. 디지털포용은 접근성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접근성을 포함하며 확장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이 서비스는 정말 모두를 위한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다시 설계해야 한다.
📌 질문은 계속된다#
이 글은 정답을 제시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대신,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을 정리한 기록이다.
다음 글에서는 이 질문을 디지털포용법이라는 실제 제도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접근성 이후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