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규제 소식은 보통 우리와 먼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금지된 용도가 어떻고, 벌금이 매출의 몇 퍼센트고, 하는 얘기는 법무팀 몫 같거든요.

그런데 8월 2일부터 적용되는 조항 안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고위험 AI 시스템이 지침 (EU) 2016/2102 및 (EU) 2019/882에 따른 접근성 요건을 준수하도록 보장할 것

뒤의 두 지침이 각각 웹 접근성 지침과 유럽접근성법(EAA)입니다. 다시 말해, AI 규제 문서가 접근성 기준을 자기 안으로 끌어들인 겁니다. AI를 만들든 갖다 쓰든, 그게 고위험으로 분류되면 접근성은 이제 “챙기면 좋은 것"이 아니라 적합성 평가 항목이 됩니다.

이 글은 그 조항이 정확히 무엇이고, 개발자 입장에서 무엇이 달라지는지 정리한 기록입니다.

유리로 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건물 앞에 나란히 걸린 유럽연합 깃발들 - 8월 2일부터 고위험 AI 시스템의 접근성 의무가 이 깃발 아래에서 시작됩니다
유리로 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건물 앞에 나란히 걸린 유럽연합 깃발들 - 8월 2일부터 고위험 AI 시스템의 접근성 의무가 이 깃발 아래에서 시작됩니다
사진: UnsplashGuillaume Périgois

이 글에서 짚는 것

  • 8월 2일에 정확히 무엇이 시작되는가 (그리고 무엇이 아직 아닌가)
  • 접근성 조항이 어디에 어떻게 박혀 있는가
  • “고위험"이 무엇인지 — 내가 만드는 게 여기 해당하는가
  • 국내 개발자에게 실제로 의미하는 것

8월 2일에 무엇이 시작되나

먼저 날짜부터 정리하겠습니다. EU AI 법은 한 번에 켜지지 않고 단계별로 적용돼 왔습니다.

데이터 표
시점적용되는 것
2024-08-01법 발효 (의무는 아직 없음)
2025-02-02금지된 AI 관행, AI 리터러시
2025-08-02범용 AI(GPAI) 의무, 거버넌스, 제재
2026-08-02나머지 대부분 — 부속서 III 고위험 시스템 의무 포함
2027-08-02부속서 I 고위험(제품 내장형)
EU AI 법의 단계별 적용 타임라인 - 2024년 8월 발효 시점에는 의무가 없었고 2025년 2월 금지된 AI 관행과 AI 리터러시, 2025년 8월 범용 AI 의무와 거버넌스를 거쳐 2026년 8월 2일에 부속서 III 고위험이 적용되며 여기에 제16조 접근성 의무가 포함되고, 제품 내장형인 부속서 I은 2027년 8월로 아직 남아 있다
EU AI 법의 단계별 적용 타임라인 - 2024년 8월 발효 시점에는 의무가 없었고 2025년 2월 금지된 AI 관행과 AI 리터러시, 2025년 8월 범용 AI 의무와 거버넌스를 거쳐 2026년 8월 2일에 부속서 III 고위험이 적용되며 여기에 제16조 접근성 의무가 포함되고, 제품 내장형인 부속서 I은 2027년 8월로 아직 남아 있다

이번에 켜지는 게 부속서 III 고위험 목록입니다. 여기에 채용·교육·신용평가·공공서비스 접근 같은 영역이 들어 있어요. 사람의 기회를 좌우하는 자리에 AI가 들어간 경우들입니다.

한 가지 짚어둘 건, 8월 2일 이전에 이미 시장에 나와 있던 시스템은 설계를 크게 바꾸지 않는 한 곧바로 소급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다만 새로 만들거나 크게 손보는 것부터는 적용되고요.

그리고 부속서 I(기계·의료기기처럼 제품에 내장되는 고위험)은 아직 1년 더 남았습니다. 뉴스에서 “AI 법 전면 시행"이라고 뭉뚱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히는 아직 한 조각이 남아 있습니다.


접근성 조항은 어디에 있나

핵심은 제16조입니다. 고위험 AI 시스템 공급자의 의무를 나열한 조항인데, 품질관리체계 구축·기술문서 보관·적합성 평가·CE 마킹 같은 항목들이 죽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접근성이 붙습니다.

이 배치가 의미하는 바가 있습니다. 접근성이 별도의 권고 문서가 아니라 다른 필수 의무들과 같은 목록에 있다는 거죠. CE 마킹을 안 하고 넘어갈 수 없듯이, 접근성도 같은 층위에 놓였습니다.

참조된 두 지침은 이렇습니다.

  • (EU) 2016/2102 — 공공기관 웹사이트·앱 접근성 지침
  • (EU) 2019/882유럽접근성법(EAA). 전자상거래·전자책·은행 서비스 등 민간 영역까지 접근성을 의무화한 법

특히 EAA는 이미 실제로 이빨을 드러낸 법입니다. 지난 6월 프랑스 법원이 유통기업 카르푸에 웹사이트와 앱을 6개월 안에 접근 가능하게 만들라고 명령했는데, “71% 준수했다"는 항변에 “어느 정도 접근 가능한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답한 판결이었죠. 이 사건은 카르푸 판결 분석에 자세히 정리해뒀습니다.

그러니까 AI 법 제16조는 새로운 접근성 기준을 만든 게 아닙니다. 이미 집행되고 있는 기준을 AI 쪽으로 끌어와 연결한 것에 가깝습니다.


“고위험"이 뭔가요

여기서 대부분의 개발자가 궁금해할 지점입니다. 내가 만드는 게 고위험인가?

AI 법은 위험을 네 단계로 나눕니다. 사회적 점수 매기기처럼 아예 금지된 것, 채용·교육·신용평가처럼 고위험인 것, 챗봇처럼 투명성 의무만 있는 것, 그리고 스팸 필터 같은 최소 위험이고요.

블로그나 쇼핑몰을 만드는 대부분의 프론트엔드 작업은 고위험이 아닙니다. 다만 이런 화면을 만들고 있다면 다시 봐야 합니다.

  • 지원자를 걸러내거나 순위를 매기는 채용 시스템의 화면
  • 시험 채점이나 입학 판정에 관여하는 교육 서비스
  • 대출 심사·신용 평가 결과를 보여주는 금융 화면
  • 공공 급여·복지 자격을 판정하는 행정 서비스

이 목록을 보면 공통점이 보입니다. 결과를 통보받는 쪽이 약자인 경우가 많아요. 취업 준비생, 학생, 대출 신청자, 복지 대상자. 그리고 이 사람들 중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당연히 포함됩니다.

접근성 조항이 왜 하필 고위험에 붙었는지가 여기서 설명됩니다. AI가 사람의 기회를 판정하는 자리에 들어갈수록, 그 판정 과정과 결과에 모두가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판정 결과를 읽을 수 없어서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면, 그건 접근성 문제인 동시에 권리 문제입니다.


개발자에게 실제로 달라지는 것

법 얘기를 길게 했으니 이제 코드 쪽으로 내려오겠습니다. 실무에서 달라지는 건 생각보다 구체적입니다.

첫째, AI 기능의 출력도 접근성 대상입니다. 모델이 뱉은 결과를 화면에 뿌리는 그 지점이요. 예를 들어 심사 결과가 비동기로 도착해 화면 일부만 갱신된다면, 스크린 리더 사용자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라이브 리전으로 변경을 알려야 하는 전형적인 상황이죠.

둘째, “AI가 만든 화면"도 예외가 아닙니다. 요즘은 UI 코드 자체를 AI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생성된 마크업이 접근성을 지켜준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div>로 만든 버튼, 맥락에 안 맞는 대체 텍스트, 남발된 ARIA는 단골 문제고요. 실제로 상위 100만 사이트의 페이지당 접근성 오류가 1년 새 늘어난 배경으로도 이 속도 문제가 지목됩니다.

셋째, 문서화가 요구됩니다. 제16조는 기술문서와 적합성 평가를 함께 요구합니다. “접근성 챙겼습니다"라는 말이 아니라 무엇을 어떤 기준으로 확인했는지가 남아야 한다는 뜻이에요. 자동 검사 결과만으로는 부족하고, 사람이 판단해야 하는 항목이 함께 필요합니다. 이런 평가를 어떤 절차로 하는지는 WCAG-EM 2.0이 표준 방법론을 정의해두고 있습니다.


한국은 어떻게 다른가 — AI 기본법과 비교하면

여기서 자연스럽게 드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도 AI 기본법이 있는데, 그럼 비슷한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다루는 영역은 거의 같은데, 접근성이 놓인 자리가 다릅니다.

데이터 표
구분EU AI 법한국 AI 기본법
시행2026-08-02 (부속서 III 고위험)2026-01-22 (이미 시행 중)
위험 구분 용어고위험(high-risk)고영향(高影響)
해당 영역채용·교육·신용평가·공공서비스채용·대출·의료 진단·학생 평가·공공서비스
접근성 조항AI 법 안에 있음(제16조, EAA 참조)AI 법에는 없음 — 디지털포용법이 담당

먼저 시행 시점이 재밌습니다. 한국이 반년 빠릅니다. 국내 AI 기본법은 이미 1월 22일부터 시행 중이거든요. “유럽이 앞서간다"는 인상과 달리, 적어도 시계는 우리가 먼저 돌아가고 있습니다.

영역도 사실상 겹칩니다. EU가 부속서 III에 나열한 고위험 목록과, 국내법이 말하는 고영향 AI(사람의 생명·신체·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AI)가 가리키는 곳이 비슷해요. 채용, 대출, 학생 평가, 공공서비스 자격 판단. 두 법이 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진짜 차이는 마지막 줄입니다.

EU는 접근성을 AI 법 안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래서 고위험 AI를 만들면 접근성이 적합성 평가 항목으로 따라옵니다. 빠뜨리면 CE 마킹을 못 받는 구조죠.

한국은 두 법으로 나눠 놨습니다. AI 기본법은 투명성·설명가능성·사람의 개입을 다루고, 접근성 쪽은 같은 날 시행된 디지털포용법이 맡습니다. 나눠 놓은 게 나쁜 설계는 아닙니다. 각 법이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실무에서는 이런 차이가 생깁니다. AI 시스템 하나를 만들 때 EU 쪽은 한 장의 체크리스트에 접근성이 들어 있는데, 국내에서는 두 법을 각각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AI 규제는 챙겼는데 접근성은 아무도 안 봤다"는 틈이 생기기 쉽죠. 조직에서 AI 컴플라이언스와 접근성 담당이 다른 팀이면 더욱요.

EU AI 법과 한국 AI 기본법에서 접근성이 놓인 위치를 비교한 다이어그램 - EU는 AI 법 제16조 안에 접근성 요건이 들어 있어 고위험 AI의 적합성 평가 항목으로 따라오는 하나의 체크리스트 구조이고, 한국은 AI 기본법이 투명성과 설명가능성을 맡고 접근성은 같은 날 시행된 디지털포용법이 따로 맡아 두 법을 각각 확인해야 하는 구조라, 담당이 나뉘면 접근성이 빠질 틈이 생긴다
EU AI 법과 한국 AI 기본법에서 접근성이 놓인 위치를 비교한 다이어그램 - EU는 AI 법 제16조 안에 접근성 요건이 들어 있어 고위험 AI의 적합성 평가 항목으로 따라오는 하나의 체크리스트 구조이고, 한국은 AI 기본법이 투명성과 설명가능성을 맡고 접근성은 같은 날 시행된 디지털포용법이 따로 맡아 두 법을 각각 확인해야 하는 구조라, 담당이 나뉘면 접근성이 빠질 틈이 생긴다

그래서 국내 개발자에게 EU 법이 주는 실질적인 쓸모는 이겁니다. 점검 목록으로 빌려 쓰기. 우리 법이 두 갈래로 나눠 놓은 것을 EU는 한 줄로 묶어놨으니, “이 AI 화면, 접근성까지 봤나?“를 되묻는 체크포인트로 삼기 좋습니다.

그리고 EU 시장에 서비스를 내놓거나 EU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다면 소재지와 무관하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국내 기업이 유럽에 앱을 낸다면 남 얘기가 아니고요.

솔직히 말하면, 법이 시키기 전에 하는 편이 늘 싸게 먹힙니다. 카르푸 판결의 71%가 그 증거고요. 나중에 6개월 안에 다 고치라는 명령을 받는 것보다, 지금 컴포넌트 하나 만들 때 Tab으로 한 바퀴 돌아보는 게 훨씬 쌉니다.


한 장 요약

  • 2026년 8월 2일, EU AI 법의 나머지 대부분이 적용 시작 — 부속서 III 고위험 시스템 의무 포함. 부속서 I(제품 내장형)은 2027년 8월
  • 제16조가 고위험 AI 공급자에게 접근성 요건 준수를 의무로 부과 — 웹 접근성 지침(2016/2102)과 유럽접근성법(2019/882)을 직접 참조
  • 접근성이 CE 마킹·기술문서와 같은 목록에 놓였다는 게 핵심. 권고가 아니라 적합성 평가 항목
  • 고위험은 채용·교육·신용평가·공공서비스처럼 사람의 기회를 판정하는 영역. 통보받는 쪽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당연히 포함된다
  • 실무에서는 세 가지 — AI 출력 화면의 접근성(비동기 결과 알림), AI가 생성한 마크업의 검토, 그리고 문서화
  • 한국과 비교하면 다루는 영역은 거의 같은데 접근성이 놓인 자리가 다르다. 국내 AI 기본법은 2026년 1월 22일부터 이미 시행 중(EU보다 반년 빠름)이지만, 접근성은 AI 법이 아니라 디지털포용법이 맡는다
  • 그래서 국내에서는 두 법을 각각 확인해야 하고, 담당이 나뉘면 접근성이 빠질 틈이 생긴다. EU의 한 줄짜리 목록을 점검 체크포인트로 빌려 쓰는 것이 실용적이다

기한이 정해진 일

접근성 작업의 어려움 중 하나는 마감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언제까지 해야 한다는 게 없으니 늘 다음 스프린트로 밀렸죠.

이제 몇몇 영역에는 날짜가 붙었습니다. 반가운 방식은 아니지만, 적어도 “언젠가"가 “8월 2일"이 됐습니다.

물론 법이 요구하기 때문에 하는 접근성은 딱 요구하는 만큼만 만들어집니다. 71%짜리 준수처럼요. 그래도 시작점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마감이 생기면 적어도 회의 안건에는 오르니까요.